파리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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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상을 나누는 이방인J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임박? 요즘 국제뉴스를 보면 자주 들려와요. 

요즘 핫한 이슈죠. 사실 이런 이야기가 들려와서 너무 안타까운데요, 역사적으로 늘 갈등관계에 있던 양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출처KBS

 

2022년 1월 21일, 러시아는 최근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10만 병력을 배치했고, 이는 전 세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 갈등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안정을 비롯해 러시아-유럽-미국의 관계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 배경

 

1.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정책을 등에 업고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움직임과, 이를 막고자하는 러시아 간의 갈등.

 

2.'돈바스 지역'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갈등.

-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에 있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고 한 달 후,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돈바스 지역의 일부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은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분리주의자들에 맞서 싸웠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사상자도 나왔다. 2015년 휴전 협정 이후로도 충돌은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갈등의 역사

인접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의 친척이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일 정도로 가깝다. 그러면서도 여러 차이가 있고, 갈등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 알아보겠다.

 

1. 종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정교회를 믿지만, 서부 우크라이나, 특히 갈리치아와 자카르파탸 지역은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2. 중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공국의 일부였지만, 키예프 공국이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면서 중세 말부터 근세 역사가 상당부분 달라지게 되었다. 이미 키예프 공국의 쇠퇴기 시절부터 상당수의 난민들이 우크라이나 북부의 러시아 삼림 지대로 이주하여 현지 원주민들인 핀-우골어족 민족들을 러시아인들과 동화시켜나가는 상황이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와 종교 사이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3. 근세

루블린 조약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연방제로 통일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가톨릭 귀족들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의 정교회를 믿는 농노들을 착취하거나 아니면 동방 가톨릭 교회로 반강제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펄쳤다.

우크라이나계 카자크들이 정교회 탄압 및 가혹한 농노제 강요에 반감을 품고 봉기하였고 러시아 차르국은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을 침공하여 우크라이나 영토에 절반에 가까운 지역을 점령한다. 처음에 러시아를 해방자로 환영했던 코사크들은 이후 러시아 제국의 우크라이나 문화 탄압 및 농노제 강요 및 강제 노동 징발에 시달려야했다. 이후 이들은 자신이 러시아인과 다른 우크라이나인이라는 민족의식을 각성하게 된다.

 

4. 19세기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멸망하고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은 갈리치아, 자카르파탸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중부, 서부 지역 상당수가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다시 편입되었고, 새로 러시아가 장악한 영토에서 동방 가톨릭을 믿던 인구 대다수는 다시 정교회로 환원된다.

러시아 제국에 탄압을 받던 우크라이나인 민족주의자들 상당수가 비교적 감시 및 처벌 수위가 약하고 서유럽 최신 학문 사조를 접하기 유리한 갈리치아로 이주하고 이를 계기로 갈리치아 일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중심이 된다.

 

5. 20세기

소련은 나치 독일과 협정을 맺어 폴란드를 분할하기로 합의했고, 곧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하지만 폴란드를 점령한 뒤에 나치 독일은 배신해 소련을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패하자 우크라이나는 갈리치아 지역을 포함한 소련에 편입되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국경은 2차 대전 이후 완성되었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내 친러파들이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소련이 우크라이나에게 영토를 선물하였다거나 고토를 회복시켰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시절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당시에는 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에 속하기도 했다. 본래 러시아 소비에트 소속이였으나, 흐루쇼프 집권기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소속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1920년에서 22년까지 러시아 극동에서 젤레나 우크라이나가 생겨났다가 소련에 의해 멸망했다.

80년대 중반에 소련의 공화국이었던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91년 12월에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벨라베자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소련은 해체됐다.

 

6. 21세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갈등을 겪고 있다. 러시아인들 중 대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지방이다 라는 인식있다.

우크라이나는 반대로 현재 러시아와 관계 절연 및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러시아 방송의 송출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러시아 언론들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우크라이나 국내 뉴스를 자국 뉴스처럼 매우 진지하게, 자주, 자세하게 보도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싫어한다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 대체로 동부 및 일부 남부지역은 친러 성향, 서부와 중부는 친서방 성향을 나타냈다. 과거에는 두 세력이 비등하게 맞서서 정권을 돌아가며 차지하며 불만과 갈등이 있어도 독립은 하지 않았으나 유로마이단으로 야누코비치 독재정권이 붕괴, 친서방 정당들이 집권하면서 반러 정책을 펼치자 친러지역 인구 상당수가 반발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불만이 폭발하여 러시아의 은밀한 지원 하에 우크라이나의 통치영역에서 빠져나갔고 남은 우크라이나 지역은 이에 분노하면서, 국가적으로 반러 성향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유로 마이단사건 

 

7. 2010년대

- 유로마이단 사건: 2010년 우크라이나에 야누코비치 정권이 들어섰고, 이때는 러시아와 잠시 우호적으로 변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다만 2012년에 지역공식어 제정과 관련된 논쟁으로 지역당의원들과 야당의원들간의 집단몸싸움이 일어났다. 그렇게 친러파와 친서방파가 같은 나라 안에서 공존하던 와중에 2014년에 일어났던 유로마이단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자 유로마이단 이후에는 우크라이나가 소련 관련 상징물을 금지하고 공산당의 활동도 금지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러시아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 등도 수입을 규제하고 있고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다. 이때문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돈바스사건: 돈바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동단의 돈바스가 실질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떨어져나간 상황이라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치하는 지역은 동부와 서부 거리지 않고 거의 친서방 일색이 된 상황이므로 더 여론이 반러에 치우쳐 보이는 것도 있다. 이후 돈바스가 초토화되자, 거주민들은 대거 피난을 갔다. UN OCHA에 따르면 1,414,798명이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고, 925,500명은 국외(주로 러시아)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조선일보

 

8. 최근

우크라이나는 자유당이 서부지역에 캠프를 차리면서 10대청소년들에게 무기훈련을 시켰고, 이 과정에서 친러 분리주의자들을 살인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유혈분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2021년 후반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측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명의 군병력을 주둔시켰다.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해 베르댠스크에 새로운 해군기지를 세우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전쟁이 날것이라 전망하고 있으며 각 국에서는 자국의 국민들에게 우크라이나를 떠날것을 촉구하고 있다. 

 

피카소가 그린 평화의 상징 비둘기

 

자료 출처: BBC, 위키피디아

 

인간은 정말... 실수를 거듭하는 동물인가 봅니다. 

21세기에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그리고 앞으로 전쟁이 생길지 모른다는 공포가 뒤덮고 있네요.

아무튼 어두운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평화를 기원하며 포스팅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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