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방인 김모씨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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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상을 나누는 이방인J입니다. 

오늘은 이름은 들어봤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몰랐던...! 찰스 다윈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해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는 너무 당연해진 개념이죠. 

하지만 신학을 공부했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창조론을 부정한,

정말 혁신적인 생각의 전환이었다는거 아시나요?

부끄럽게도 저는 왜인지... 찰스 다윈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헷갈렸어요. (사진이 닮아서...)

그럼, 부끄럽지 않기 위해! 찰스 다윈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찰스 다윈, 그는 누구?

찰스 로버트 다윈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 1809년 2월 12일 ~ 1882년 4월 19일

- 영국의 생물학자, 지질학자, 진화론의 선구자, 박물학자, 철학자.

- 다윈은 생물의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졌다고 보고,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와의 공동 논문에서 인위적인 선택인 선택적인 교배와 비슷한 현상이 생존경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소개했다. 박물학자 이래즈머스 다윈의 손자이며, 생물학자 프랜시스 골튼의 외사촌 형이기도 하다.

  - 찰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 당시 지배적이었던 창조설, 즉 지신중심주의 학설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인류의 자연 및 정신문명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
사진출처:NATURE.COM 다윈

찰스 다윈의 삶

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 슈루즈베리(Shrewsbury)에서 부유한 의사 로버트 워링 다윈과 어머니 수잔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들은 박물학자였다.

그는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쓴 책들을 읽으면서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윈은 슈루즈버리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윈은 16세 때인 1825년에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 슬하를 떠나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의학을 배웠으나 피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졌다.

당시 에드먼스턴에게서 동물의 박제 제작 방법을 배웠다. 다윈은 존 에드먼스턴이 가르쳐준 박제만들기는 나중에 비글호의 항해에 참가해 생물 표본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윈은 로버트 에드몬드 그랜트의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활환경과 해부학의 연구를 도왔다.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자, 아버지는 다윈을 성공회 신부로 만들기 위해서 1827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넣어 신학, 고전, 수학을 배우게 했다. 다윈은 성공회 신부가 되면 성공회 미사 집전, 성서와 신학연구등의 교회 일을 하고 남는 시간의 대부분을 박물학에 쏟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들였지만 찰스 다윈의 관심은 신학이 아닌 박물학이었다. 다윈은 성직자이면서 지질학자였던 아담 세지윅에게 배웠다. (당시 다윈은 신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모든 생물은 하느님이 천지창조의 시점에서 완벽한 형태로 창조했다고 하는 설을 납득하고 믿었다.)

사진출처BBC 다윈의 적색노트

비글호의 여행과 다윈의 적색노트

다윈은 성공회 교회에서의 목회보다는 생물학과 지질학에 관심이 많아 세지위크 교수를 따라 북웨일스에 지질학 연구를 위해 여행했다. 헨슬로의 추천으로 1831년 12월 27일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이 이끄는 〈비글〉이라는 이름의 탐험선에 박물학자로서 타고 약 5년(1836년 2월 10일까지) 동안 탐사 여행을 했다. 당시 그는 생물학자로서 승선한 게 아니라,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원하는 선장의 지적 욕심에 따라 승선한 것이었다.

다윈은 관찰한 것, 이론적 고찰을 꼼꼼히 기록했고, 가끔씩 견본들을 편지와 함께 가족들을 위해 잡지 사본을 캠브리지로 보냈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각 섬, 그리고 섬의 해변과 내지에 사는 거북과 새들이 동일한 과에 속하는 종임에도 환경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다윈을 깊이 매료시켰다. 또 다윈은 이 여행에서 파타고니아에 있는 푼타아틀라에서는 절벽의 오래되지 않은 조개껍질 옆에서 멸종한 거대 포유류의 화석뼈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날씨나 재해로 인한 변화의 징조없이 최근에 멸종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증거였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은 더 오래된 “창조의 중심”에 덧붙여진 야생에서 증거를 찾았다.

  1836년까지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지질과 동식물에 대하여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그 결과 생물의 진화를 확신하게 되었다. 세계 일주 탐험에서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결과 보고서 작성에 노력하였다. 1837년 다윈은 이른바 "적색 메모장" (Red Notebook)에 최초로 종의 변화에 관한 착상을 기록했다.

 

사진출처: 동아일보

 

종의 기원과 진화론

다윈에 의하면 어떤 형태의 생물이 오랜 세월동안 환경에 맞추어서 서서히 모습을 변화해간다.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

그의 발언은 당시 기독교 사상 아래 있던 유럽세계에 충격이었다.

이후 진화론의 찬반을 놓고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었다. 그의 발표는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 신학자들의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 그 후 약 10년 동안 확고한 기반을 닦게 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차츰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동물학·식물학 및 인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저서로 <가축과 재배 식물의 변이>와 사람의 진화에 대해 다루는 <인간의 유래>(1871) 등이 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여전히 많은 분야에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데요, 

그중 하나가 저도 재미있게 읽은, 정유정 작가의 책 <종의 기원>입니다. 

찰스 다윈의 일생을 들으니 더 매력있고 흥미로운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찰스 다윈에 대한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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