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모두 들어보셨죠? 아주 먼 옛날 살았던, 대천재라고 요약 가능하겠습니다... ㅎㅎㅎ
저는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망한 프랑스의 생가에 다녀온 적도 있었어요.
그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에 대한 요약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출생: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빈치 ~사망: 1519년 5월 2일 프랑스 앙부아즈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이탈리아어: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석학(polymath)이다.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주요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 암굴의 성모,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수태고지,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안나와 성모자, 세례자 요한, 헬리콥터 디자인,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 헝클어진 머리의 여인, 살바토르 문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
1. 사생아 다빈치 아버지 피에로 다 빈치(Piero da Vinci)는 법률가들을 배출한 지주 가문 출신으로 직업은 공증인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의 나이 23살로 결혼전이었으나 생모는 사회적 신분이 낮았고 지참금을 낼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사생아에 대한 차별이 심한편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차별과 무시는 존재하였다. 다빈치는 정식 학교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지 못했고 비공식적으로 이탈리어등을 배웠을 뿐이며 당대 귀족이나 식자층의 자녀들처럼 라틴어와 그리스어등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 대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라틴어는 마흔이 넘어 공부함.)
2. 다빈치와 예술
- 입문 레오나르도는 1466년 열네 살 때,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 20대 초반까지 미술 및 기술 공작 수업을 받았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조각에만 몰두할 정도로, 레오나르도를 제자가 아닌 화가로서 존중했다고 한다.
-제1 밀라노 시대 (1482-1499년) 약 17년 동안 화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암굴의 성모〉(1483년, 루브르 박물관)와 〈최후의 만찬〉(1495~1498년, 밀라노)이 제작되었다.
- 제2 피렌체 시대 (1500-1506년) 다빈치는 1499년 프랑스 왕 루이 12세의 밀라노의 침입으로 1500년 피렌체로 돌아왔다. 여기서 제단화 <성 모자와 성 안나>를 그리고, 1502년에는 체잘레와 보르지아에 토목 사업 운하 개발 도시 계획을 위해 초청되었다. 1503년에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그의 과학 연구가 한층 성장하여 새가 나는 방법, 지질학과 물의 운동, 해부 등에 관한 수기를 남겼다.
- 제2 밀라노 시대(1506-1513) 밀라노에서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루이 12세의 궁정 화가가 된다.
- 앙부아즈 시대 1513년 10월, 다빈치는 피렌체로 돌아왔다. 다빈치는 새로운 통치자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게 되었는데 그가 교황군 사령관직을 맡게 되면서 1513년 10월에 함께 로마로 이주하였다. 이후 메디치가문의 후원이 끊기자, 루이 12세의 프랑스 초청에 응해 1516년 여름, 제자 프란세스코 멜치와 함께 다빈치는 프랑스 앙부아즈로 이주했다. 다빈치는 3점의 그림 (모나리자라 조콘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을 가져갔는데 프랑스에서 <성 안나와 성모자>와 <모나리자>를 완성하였다. '앙부아즈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다빈치는 여러 방면에 대한 오랜 연구를 정리하고 운하도를 설계하였으며 수학 실험과 해부학 연구를 계속 진행하였다.
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망 1516년 이후 프랑스에서 계속 거주하며 활동하던 다빈치는 서서히 기력이 약해지자 소일거리를 하는 시간이 증가하였다. 1519년 4월 23일, 죽음을 직감한듯, 유언장을 작성하였다. 유언장에서 그는 사후 프랑스에 묻히길 희망했고 그의 동성애 상대였던 살라이와 다빈치의 하인 바티스타에게 밀라노 공작에게 받은 포도밭을 반씩 나누어 상속하며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모나리자'등의 그림과 메모가 적힌 노트들을 제자인 멜치에게 상속한다는 내용 등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1519년 5월 2일 그의 나이 67세에 프랑스 클로 뤼세(Clos Lucé)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사망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부터 수세기가 지났는데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뒤를 잇는 천재는 등장하지 않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