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와서 우연히 생긴 궁금증, 투탕카멘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해요.
참고로, 루브르에서 이집트 관은 SULLY관입니다^^
투탕카멘이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분, 계시죠?
투탕카멘, 그는 누구인가?
- 이집트 신왕국 18왕조의 13대 파라오.
-Tutankhamen 보통 연음하여 "투탕카멘"이라고 발음하지만, 정식으로는 투트-앙크-아멘(아멘의 살아 있는 형상)이다.
-재위 시기는 기원전 1323년으로, 지중해 건너편에서는 한창 그리스 신화 시절이다.
- 안타깝게도 그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미소년이었다고 전해지는데, 파라오의 황금 마스크는 고인의 형상을 그대로 본따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황금 마스크의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조화가 잘된 애잔한 얼굴이다. 실제로 미라를 기반으로 두상을 만들었더니 미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밀 측정을 한 결과 본모습은 미남형이 맞지만 뻐드렁니가 있는 애매한 형상이었다.
- 이집트역사에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는데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그의 무덤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어린 파라오의 죽음 대한 여러 신화와 미신들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투탕카멘의 죽음과 미스터리
그의 죽음은 개명과 아톤 신앙을 버리게 된 것도 아이가 종용한 탓이라는 설이 있다. 발굴 당시 미라를 X-선 촬영한 결과 머리에 큰 상처로 보이는 자국이 발견되어, 그의 사인은 둔기에 의한 두개골 골절, 즉 암살당했다는 설이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정밀한 CT 촬영에 의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개골 골절 같은 것은 아예 발견되지 않았고, 두개골에 나있는 갈라진 금은 죽었을 당시에 아직 미성년자여서 두개골이 채 다물어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밝혀졌다. 즉 X-선 촬영 당시에 나타난 자국 자체가 허상이었다.
이후 CT 촬영에서 밝혀진 또 다른 사실은 다리에 심각한 골절이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걸 사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항생제가 없었던 당시에는 이런 상처가 덧나 죽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한편으로는 워낙 부친인 아케나톤이 유전적 기형 의혹을 받고 있다 보니, 그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 유전병으로 인해 원래 몸이 허약했고, 그래서 오래 재위하지 못하고 병사했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위의 다리 골절도 그 증거로 보기도 한다.
CT 촬영에서 밝혀진 사실은 이러하다.
1. 무릎 바로 위쪽에서 심각한 골절이 발견되었다.
2. 왼쪽 갈비뼈 여러 개가 부러져 없어졌다.
3. 심장이 없다.
고대 이집트의 사제들은 시신을 엠버밍할 때 내장을 제거했지만, 심장만은 남겨두었다. 사후 세계에서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심장의 무게를 재서 생전의 죄를 심판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장이 제거됐을 정도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손상되어 사제들이 알아보지 못했거나, 도저히 보존이 불가능한 수준이라 포기하고 꺼냈을 정도로 죽을 당시의 부상이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 말라리아를 사인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미이라를 연구한 연구팀이 유전자 검사로 투탕카멘이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인 기생충인 열대 열원충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실제로 말라리아로 인해 사망할 경우, 독특한 증상 때문에 독살당한 것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미이라를 조사한 결과, 그는 구순구개열로 인한 언어 장애자였고 왼쪽 다리의 내반족과 오른쪽 다리의 뼈 질환으로 걷기가 힘든 장애인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집트 왕조가 대대로 부녀간, 남매간 근친혼을 장려한 결과, 유전병 유전자가 계속 내려오면서 이런 비극을 낳고 말았던 것이다. 현재에는 여러 가지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 체계가 약했던 투탕카멘이 다리 골절상을 입은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다.
+그 외에 발의 장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닌 전투 중에 입은 상처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은 투탕카멘이 많은 전투에 참가했으며 무릎의 골절상 주위에 파상풍과 염증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싸웠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의 무덤에 써진 문구,
왕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는 자를 축복하리라.
당시로서도 사인(死因)이 애매했을 수 있다. 투탕카멘의 저주 어쩌고 하는 글귀에 흔히 나오는 경고문 "왕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의례상 새기는 말이다. 이 글이 새겨진 바로 옆에 쓰여 있는 게 저 문구.
투탕카멘의 미이라에서 발견된 외상을 통해 전차 경주 중 사고가 사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의 선조들 때부터 거듭되어 오던 근친혼의 폐해로 생긴 유전병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거기다 황금 마스크의 미남 모습과는 달리 뻐드렁니에 선천성 내반족이 있어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사산되었다는 두 딸도 유전병으로 보이며 설령 성장했다고 해도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투탕카멘의 무덤에 얽혀있는 TMI
투탕카멘은 자손도 없었고 너무 어려서 딱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탓에 그야말로 존재감이 없는 파라오였다. 20세기에 들어서 일어난 그 대발견이 없었다면, 투탕카멘을 기억하는 것은 이집트의 역사학자들 정도밖에 없었을거고, 그들도 18왕조의 후반기의 재위 기간이 꽤 되었지만 별 비중이 없는 파라오로 간단히 짚어넘기는 수준에 머물렀을 거다. 그러나 1922년 11월 4일에 왕가의 계곡에서 엄청난 발견이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거의 도굴되지 않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규모가 작고 별볼일없는 무덤은, 재위 기간이 짧고 별볼일없는 파라오 투탕카멘에게 걸맞은 것이다. 투탕카멘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의 무덤은 사실 다른 귀족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무덤을 이용한 것이다. 투탕카멘의 뒤를 이은 아이의 귀족 시절 무덤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거기다 아이가 투탕카멘의 원래 무덤을 차지했다는 설이 있다.
어디서 들어만 봤던 투탕카멘, 알고 나니 더 흥미로워요.
아주 오래 전 사람이여서 여전히 미스터리가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관은 정말 흥미로워요. 실제로 미이라를 봤을때는 충격적일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