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상을 나누는 이방인J입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뭘 한 사람인지 사실 정확히는 모르는 윈스턴 처칠에 대해서 정리해 보려고 해요. 일단 윈스턴 처칠, 그에 대한 짧은 요약은 '다이아몬드수저'+'대담한 운명'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엄청난 가문에서 태어나, 전쟁에 3번이나 참여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데다가, 노벨 문학상까지 탔다니요..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닙니까? 아무튼, 그의 생애 정리해볼게요!
윈스턴 처칠
1. 처칠의 출생과 사망
출생: 1874년 11월 30일
출생지: 영국 블렌하임
사망:1965년 1월 24일
사망지: 영국 런던 켄싱턴
2. 처칠의 가문 윈스턴처칠은 유명한 정치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유명한 정치인 가문에서 태어났고, 무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먼 친척이기도 하다.
3. 처칠과 전쟁 -처칠은 윤국사관학교 출신으로 졸업 후 기병 소위로 임관하여 보어 전쟁에 참전했으며 처칠은 수단과 인도 말란칸트에서 주민들이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항하여 일으킨 항쟁을 진압하는 일에 가담했다.
- 처칠과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처칠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장관을 맡고 있었다. 처칠은 전쟁이 일어나기전부터 군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어 속도를 빠르게 향상시키는 등의 국방개혁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으나, 독일이 잠수함을 개발하는 바람에 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의 무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영국군을 파병한 작전도 인명과 재산피해가 커서 사실상 실패한 작전이 되었다. 처칠은 이때 작전 실패로 장관직에서 사퇴했다가 중간에 중령으로 복귀하여 참전하였다.
-처칠과 제2차 세계대전 처칠은 한때 나치 독일이 영국을 공습할 것을 염려해 과거 공군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가 무시당했었는데 이후 나치 독일이 진짜 영국을 공격하자 처칠은 해군장관에 임명되었다. 처칠은 영국 본토 항공전을 막아내고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처칠 시대에 지은 벙커는 현재도 영국 지하에 있다. 강인한 리더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총리는 1943년 11월부터 1945년 7월까지 카이로 선언, 테헤란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선언 등, 전후 유럽 문제를 놓고 연합국이 몇 차례 회담을 열어 나치 장본인인 히틀러를 전략적으로 압박하였다.
4. 은퇴후 처칠의 삶 - 1953년 처칠 회고록을 저술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 수상자 - 1964년 미국 의회는 처칠에게 미국 명예시민권을 수여하였다. - 1965년 1월 24일, 향년 91세로 고인이 되었다.
처칠의 철의 인생은 말년까지 완벽하네요. 심지어 장수하셨어요.
이런걸 보면 세상에 운명이 있나 싶습니다.
처칠의 삶, 정말 인상깊게 봤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처칠의 회고록도 읽어볼만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