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사건은 1914년 6월 28일 현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사건을 의미한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유럽나라들은 두 세력으로 나뉘어있었다. 그 둘이 마주친 곳이 바로 발칸반도였다. 러시아, 오스트리아등 강대국이 눈독들이고 거센 외교 분쟁이 일어나던 곳으로, 그 곳의 심장부가 바로 사라예보였다.
세르비아는 1389년 오스만 터키에게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고 터키,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가 1878년 러시아, 터키 전쟁을 틈타 터키에 독립했지만 당시 보스니아는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야했다. 민족주의 청년 프란시스는 1914년 오스트리아 제국 황태자와 황태자빈을 총으로 쏜다.
제1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원인은 제국주의였지만 그 촉발은 명백히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한 것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간략 요약하자면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으로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되었고,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
(영국,프랑스,러시아 vs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터키)
사라예보사건으로 촉발된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슬라브계 민족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범슬라브주의를 경계했는데, 사라예보사건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의해 벌어지자 이를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 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비난했다.
3. 독일은 같은 말을 쓰는 오스트리아 편을 들었다.
4. 프랑스는 독일은 경계해 러시아 편을 들었고, 영국도 프랑스와 함께 러시아 편을 들었다.
5.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세르비아가 그중 일부만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오스트리아가 선전포고를 했다.
6. 러시아는 국내의 사회주의혁명운동을 막을 요량으로 제일 먼저 동원명령을 내렸다.
7. 독일은 러시아에게 동원명령을 취소하라고 분노했다.
8. 프랑스는 독일의 요구를 거절하고 전쟁에 동원했다.
9. 독일이 프랑스를 쳐들어가면서 벨기에 침략.
10. 영국은 독일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략한 것을 구실삼아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11. 전쟁은 계속되었고 흑해를 두고 러시아와 싸우던 터키는 독일과 한패가 되었다.
12. 이탈리아도 가담했다.
13.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를 점령하기위해 독일과 손잡았다.
14.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인도인을 전쟁에 참여시켰다. (지켜지지 않음)
15. 일본은 영국편을 들어 독일을 궤멸시켜 독일의 중국에 대한 이권을 빼앗았다.
16. 미국은 명예로운 고립을 택했다가 영국 외교장관 발포어가 유태인을 꼬드겨 나라를 세워주고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독립을 약속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