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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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즌을 기념하여 회고해보는, 

나의 눈물겨운 재수 실패담.

 

 

눈물 겨운 재수 실패담

나는 2012수능, 2013, 2014. 삼수를 했다. 

전국에 삼수한 사람이 몇명이나 되나 궁금하다. 

아무튼, 이제는 거의 십년이 다 되어 가서, 지금 입시생들과 좀 입시방식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나는 입시 방식이라던가, 학교 잘가는 법! 이런게 아니라 나의 경험담을 적어보려고 한다.

누군가 수능을 보고, 재수 경험 썰... 이런 것을 구글에 검색하게 되었을때 읽어 보면 

아 ... 나 혼자가 아니구나. 이런 망생도 있었구나, 근데 지금 잘 살고 있구나 해줬음 좋겠다. 

 

 

일단 십년이란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객관화해 보자면,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포자였고, 영어는 좀 잘했다. 그래도 되게 완전 잘한건 아니여서 2,3등급. 1등급은 받아본적이 없다. 국어는 왜이렇게 어려운지 4,5등급. 못했고 윤리와 근현대사를 선택했는데 이것도 4,5등급이었다. 

 

당시 나는 영화과를 지망했다. 

예체능과 예체능 아님의 중간. 어떤 학교는 잘 들여다보면 수학을 잘 안봤고, 수시로 글쓰기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영화과 입시 학원을 다니면서 면접공부나 수시 시험방식, 정시 시험방식등을 공부했다. 

수시로는 눈이 높아 인서울 중상위권에 넣었다가, 돈만 털리고 끝났다. 

수시는 아무리 운도 중요하다지만 적당히 자기의 주제를 파악하고 넣는게 중요하다. 그때는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턱도 없는데에 괜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것 같다.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미라클썰은 누구 로또 당첨됐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흔한일이 아니니 기대는 안하는게 좋은 것 같다. 

 

우리 학교가 동네에서 나름 학군 좋은 학교라서 내신도 좋을리 없었다. 수시로 대학 가는 애들은 거의 없고 다들 정시파인 그런 학교였다.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라 내 친구들도 나도 다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더랬다. 그래서 끼리끼리 지냈던것도 인정한다. 아무튼 그 와중에 우리는 밝게 행복하게 잘 지냈다. 남들 찌들어서 공부할때 소풍도 다니고

시도 쓰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그 결과, 재수 꽝꽝!

 

 

사진 일간 스포츠

 

 

 

당시 나는 재수학원을 다녔다. 신설동에 있는 비타애듀. 왜 거기를 갔는지는 모르겠다. 친구가 자기 아는 오빠가 여기 다녔다고 했고, 그래서 친구랑 같이 다녔다. 다른데보다 좀 쌌던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거기 다니면서 공부 정말 열심히 했다. 일단 나는 예체능반에 들어갔다. 수학은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었고, 여전히 몇몇 학교가 수학을 별로 안본다는 것으로 위안삼으면서 그렇게 했다. 

 

그때 내가 반에 들어가서 첫 모의고사를 봤는데 반에서 일등을 했다. 영어성적이 높았던게 가장 큰 요인이었고, 사탐 성적도 늘었다. 무엇보다 반 애들이 전반적으로 공부를 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반에서 일등이 되었고, 그후로 담임의 기대와 총애를 받았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착한 아이, 모범생이라는 눈빛. 선생님이 잘해주셨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일단 그런 긍정적인 응원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던것 같고, 

한번도 열심히 해보지 않았다고 열심히 사는 것 자체에서도 기쁨을 느꼈다.

재수 하는 친구들이 꽤 되었기때문에 그렇게 외롭지도 않았다. 

우리는 만나면 더 좋은 학교 가자. 성적 이만큼 올랐다. 우리 열심히 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고삼보다 일년 더 공부하니까 무조건 잘되기만 할 줄 알았다. 

고단하고 괴로우면서 희망에 들떴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뭐랄까. 자기효능감이란것을 느꼈던것 같다. 나도 잘 할수 있구나!!

재수때 정말 열심히 했다. 재수 학원에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집에서도 공부하고 주말에도 공부하고, 

그때는 수학은 여전히 포기지만 이외의 과목에서 평균 2등급을 유지했다. 

그러나, 수능은 또 공부열심히 하는 것을 포트폴리오처럼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날 시험을 잘 쳐야 하니까,,,

너무 열심히 해서 수능 전날까지 밤 새다시피 책을 붙들고 있어서 수능에서 엄청 떨었다. 

라떼는 국어에 듣기가 있었는데 그게 맨 처음 국어 시험의 시작이었다. 거기서부터 미끄러졌다. 패이스조저 실패.

망했다. 생각으로 끝까지 갔다. 그리고 진짜 망했다. 수능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망했다는 것을 실감했고

집에 와서 바닥에 내리치며 울었다. 

 

3,4등급의 성적대였다. 

실기를 잘하면 괜찮을거라고 입시 학원에서 말해주었다. 

무리해서라도 인서울 4년제를 고집했다.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읭? 싶었던 인서울 대학교를 알게 되었다. 

아무튼 붙어도 딱히 가고싶지 않은 대학교 + 붙을 가능성 별로 없는 대학교를 섞었다. 

다 떨어졌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수 있는데 그때는 진짜 엄마아빠한테 미안해서 내 영혼을 갈아드리고 싶은 기분. 

울다 지쳐 눈뜨면 사라졌으면 좋겠는 기분이들었다. 

삼수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응원해주었다. 하라고 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 가족들의 응원이 뒷받침되었다는것. 그러나 아빠가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했다고 했다.

 

재수하면서 엄마한테 가족들한테 짜증을 정말 많이 냈다. 내가 오면 가족들이 말을 하다가 멈출 정도. 내가 공부에 

집중하는동안 가족들은 내게 집중했고, 내 기분 다 받아줬다. 그게 미안해서 또 울었다. 나는 그냥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싶었어요. 말하면서 울고 싶었는데 그 대신 이제 짜증 안내겠다고 약속했다. 

 

 

붙은 데가 없었고, 일단 그냥 재수까지 한 마당에 전문대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삼수 하게 되었다. 

재수 하면서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성적이 오를공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아쉬운점들이 생각났다. 

공부만 하는게 아니라 자기 관리도 중요하고, 기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는것. 

그리고 수준파악해서 입시해야 겠단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삼수까지 하게되었다. 

 

 

재수 썰을 찾아보는 분들에게 최악의 결과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 

삼수라니... 삼수라니. 

이 포스팅의 글은 재수 실패 썰이지만,

이다음에는 삼수 성공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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