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진짜 이러날까 했는데... 결국 일어났습니다. 역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인가 봅니다.
그럼 오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의 명분으로 삼은 '나토 가입'이 뭔지 간단하게 알아보려고 해요.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유럽이나 북미에 있는 어느 일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그러한 공격이 있을 경우 유엔헌장 제51조에서 인정한 독자적 또는 집단적 방위권한을 행사하여 각 회원국들은 집단적 또는 독자적으로 공격받는 국가를 상호원조한다.
- NATO 헌장 제5조
NATO
1949년 창설한 북미와 유럽 등 서방 국가의 군사동맹이다. 본부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위치하며 수장은 옌스 스톨텐베르그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나토는 해체되지 않은 채 자유세계의 영향권이 된 동구권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수용하여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NATO의 시작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1~2년 사이에 동유럽이 모두 공산화되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베를린 봉쇄로 소련의 팽창주의와 군사적 위협이 서방으로까지 확대되자 위협을 느낀 서유럽 국가들은 군사적 동맹을 창설하기로 긴급히 합의하고, 이에 베를린 봉쇄가 진행 중이던 1949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이 조인되어 나토가 창설되었다.
나토VS바르샤바
나토의 출범 목적은 전후 러시아의 유럽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1955년 옛 소련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군사 동맹체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해 나토에 대응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중 상당수는 나토 회원국이 됐다. 나토 회원국은 현재 30개국이다.
NATO국가
나토 창설 국가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이었다. 처음에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북미와 중부 유럽 국가들 중심으로 협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베를린 봉쇄로 위기감을 느낀 북유럽과 남유럽 국가들도 대거 참여를 희망해오면서 창설국이 늘어나서 중립국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NATO 창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1952년 2월 18일 그리스와 터키가 가입했다. 1955년 5월 9일 그동안 가입 여부가 쭉 논의되어 오던 서독이 공식적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프랑코에 의해 중립국을 표방했던 스페인은 그의 사후 1981년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1982년 5월 30일 NATO에 가입하였다. 서독의 독일연방군에 흡수 통합되어 NATO에 흡수되었다.
1999년 3월(체코, 헝가리, 폴란드)과 2004년 3월(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두 차례에 걸쳐 구 동구권 국가들이 NATO에 합류했다.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NATO에 가입했으며, 2017년 몬테네그로, 2020년에 북마케도니아가 NATO에 가입했다. 북마케도니아는 국호까지 바꾸면서 NATO 가입에 열의를 보였다. 현재 유럽에서 도시 국가를 제외하고 NATO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영세중립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반중립국인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중립국이었던 구 유고 출신의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아일랜드,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몰도바가 있다.
NATO군
NATO군의 실전 참전은 냉전 시기에는 일어나지 않았고, 냉전이 끝난 후 90년대 지옥도가 펼쳐졌던 유고 내전 당시 그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코소보 전쟁 때 결국 NATO군이 개입했다.
냉전 이후
1990년대 초에 냉전은 끝났고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1991년 7월 1일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했다. 냉전이 끝나가면서 동독이 소멸하고 독일이 통일될 때, 미국과 소련은 NATO의 영역을 당시(1990년 수준)에서 확장하지 않는다는, 명문화되지 않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NATO는 동유럽으로 확장되어갔다. 빌 클린턴 정부가 나토 확장론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 원인으로는 다음이 있다. (폴란드나 체코, 헝가리 등 이미 소련 시절 러시아에 호되게 당한 중부 유럽 및 동유럽국들이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해서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끈질기게 NATO가입을 요구했다.)
보스니아 전쟁처럼 NATO가 아닌 국가에서 러시아에 가까운 세력이 개입해 발생한 전쟁과 대량학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미국과 NATO가 무력하게 아무런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없었다.
NATO 활동 상황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공식적으로 UN군이 참전한 전쟁이지만 UN군의 주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NATO 회원국들이었고, 실질적으로 NATO가 참전했다고 봐도 어느 정도 무방했다. 당시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NATO 가입을 희망해 오던 터키는 6.25에 파병했고, 덕분에 6.25가 진행 중이던 1952년 NATO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6.25전쟁은 창설된 지 1년 밖에 안된 나토군의 체제를 정비하는 기회가 되었다.
1961년 인도가 포르투갈령 인도 식민지인 고아, 디우, 다만을 돌려받기 위해 무력침공을 강행했을 때 이를 막아낼 역량이 없었던 포르투갈은 NATO의 회원국이므로 NATO의 공동대응을 역설하며 지원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은 NATO 관할이 아니라고 했고 포르투갈은 끝내 인도 식민지를 모두 버려야 했다.
현재까지의 실전은 코소보 전쟁이 한참이던 1998년 유고 공습 작전(Operation Allied Force)과 2011년 1차 리비아 내전 때의 공습 작전(Operation Unified Protector)뿐이다. 특히 코소보 개입은 NATO의 힘을 여실히 증명하면서도 오히려 NATO, 나아가 유럽 역내에서의 미국의 비중을 극명히 드러내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NATO
우크라이나는 독립 직후부터 NATO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친러파와 반러파로 나뉜 우크라이나의 정치 환경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 특성상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NATO 가입에 반대하였고, 아직 동구권으로 확대되지 않은 NATO 역시 우크라이나의 가입에 부정적이었다.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는 NATO 관련 협의가 전부 중단되기도 하였고 이 당시 NATO 가입 반대여론은 극에 달해 우크라이나 국민의 60~70%가 NATO 가입에 반대한다는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가 뜨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4년 크림 위기와 돈바스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내 친러파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반러 감정이 커지면서 NATO 가입은 재추진되고 있고 국민 여론도 압도적으로 이를 지지하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크게 반발하였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결국 2022년 러시아가 NATO의 확장을 핑계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 발발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NATO 가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미 전쟁 중인 국가의 생존을 위해 NATO가 대신 참전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