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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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상을 나누는 이방인J입니다!

 

오늘은 프라하의 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가끔 00의 봄, 이란 말 자주 들으시죠? 주로 민주화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의 유래가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럼 포스팅 시작해볼게요!

 

프라하의 봄 당시의 상황

 

프라하의 봄이란?

 의미: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당 제1서기 알렉산데르 둡체크에 의해 시작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유화 운동.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각색한 영화.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라하의 봄 배경

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체코는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다. 1946년 열린 체코슬로바키아 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프로젝트를 계획 및 진행하는데, 그 프로젝트에는 비공산계 야당 탄압 계획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야당을 강하게 탄압하면서 공산당은 공화국 경찰간부를 모두 공산당 계통 인사로 채우며 일당독재 체제를 본격적으로 형성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2월 정변, 혹은 '프라하의 쿠데타'라고 한다. 이후 20만 명에 달하는 비공산계열 시민들이 직장을 잃어버린다. 이후 공산당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커져갔다. 게다가 이어지는 경제난 속에 국민들은 점차 공산당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부비판여론이 다시금 쇄도하기 시작하는데, 지식인과 문학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숙청작업과 경제계획 비판에 대해 일단의 당 관료들조차 수긍하게 되자 공산당은 결국 수정주의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델은 정부의 경제개입제한, 그리고 시장경제의 원리 도입을 그 골자로 하였다. 둡체크가 집권하자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이를 본받은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러한 수정주의의 바람을 타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자유주의의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권력독점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경제 수정주의와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는데,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 도래한 것이다.

('프라하의 봄'이란 '자유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80년대 서울의 봄 사진출처: 시사오늘

 

2. 이러한 개혁안에 대해 바르샤바 동맹은 즉각 반발하였으며 민주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체코인의 목표가 서로 충돌하게 되면서 소련군이 체코에 쳐들어온다. 소련에 의해 주요 공항과 방송국들을 점거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명한 민주화 인사들을 감금했고 저항하는 자는 살해당했다.

 

구스타프 후사크

 

3. 그 뒤 민주화 바람을 타고 구스타우 후사크가 정권을 잡아 소위 정상화(normalizace)정책을 실시하였다. 말그대로 프라하의 봄 이전 시대의 정책으로 돌아가겠다는 뜻.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체코는 한동안 열병을 앓아야 했다. 

 

 이상, <프라하의 봄>에 대한 배경과 사건의 개요를 살펴봤습니다.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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