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방인 김모씨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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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상을 나누는 이방인J입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NATO와 함께 바르샤바 조약이 자주 언급되고는 하는데요

그럼 바르샤바 조약은 어떤 것이었는지 간단 정리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바르샤바 조약

바르샤바 조약기구 (ОВД, WTO)

설립: 1955년 5월 14일 ~ 해산:1991년 7월 1일

본부: 폴란드 바르샤바

회원국: 8개국(발족 당시)

 

바르샤바 국가

정식명칭은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으로, 일반적으로는 바르샤바 조약으로 불리며 영어로는 Warsaw Treaty Organization(WTO)인데 최근에는 이후에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의 약자와 동일하다 보니 혼동을 막기 위해 Warsaw Pact로 쓴다.

바르샤바 조약 창설 당시

바르샤바 조약의 시작

폴란드 바르샤바

바르샤바조약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서방에서 만든  NATO에 대항하기 위해 소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군사적, 정치적 동맹이었다. NSWP(Non Soviet WP)도 12,000대 이상의 전차로 대표되는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집단안보체제는 명목뿐이며 사실상 동유럽의 군대를 소련군이 통제하는 형태였다. 각 국가의 군통수권을 소련군이 장악하여 운영했고 특히 동독은 이것이 가장 심했다. 당장 폴란드 인민군만 하더라도 초기에는 국방장관들이 소련군 장성들이었다. 건실한 서독이나 영국, 프랑스가 자체적으로 다양한 무기체계들을 개발해 운용하고 있을 때 비소련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도를 제외하면 기술부족으로 무기체계 대부분이 소련제 일색이었다.[5] 경제적 요건+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이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수준의 강력한 해군을 육성할 수도 없었고 핵무장 또는 소련군과의 핵무기 공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물론 폴란드는 일본에서 몰래 지원을 받아서 핵개발을 추진했다가 소련에게 조인트를 까였다. 거기다가 제2의 헝가리 혁명이나 프라하의 봄을 대비해 회원국들은 서로를 견제해야 했으며 한쪽에서 혁명이 발생하면 다른 회원국의 군대들이 소련군과 함께 밀고 들어가 혁명을 진압해야 했다. 여러모로 소련군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안보 형태. 그래도 적어도 당시 3류~2류 국가였던 대한민국이나 병력수 만 120만으로 불어난 북한군 그리고 문화대혁명 등의 영향으로 맛이 갔던 당시 중국인민해방군보다는 전부대가 기계화된 비소련 바르샤바 조약군이 확실히 우위였다.

 

바르샤바 해체

1991년 소련 해체와 거의 동시에 바르샤바 조약기구도 해체되었다. 이후 21세기 초에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들 중 폴란드, 체코를 시작으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같은 나머지 국가들마저 NATO에 가입하면서 동유럽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이 거의 없어졌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마저 NATO 가입을 신청하려 했다. 폴란드를 비롯한 러시아를 직접 맞상대하는 최전선 국가들은 찬성했지만 실세인 서유럽이 가스 값 오른다며 반대했고, 우크라이나는 내부의 정치적 대립으로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우크라이나 축구선수의 NO WAR 퍼포먼스

마무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의 명분으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 했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 우크라이나는 나토도 아니고, 나토에서도 우크라이나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어요,

전쟁이 일어나서도 나토는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투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죠. 

사실 나토, 바르샤바조약과 같은 것들은 없어진지 오래인데... 여전히 그것을 명목삼아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킨다는게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 

2022년에 전쟁이 일어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시한번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원하며, 이만 바르샤바 포스팅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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