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란?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자로, '국제 통화 기금'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직에서는 환율과 국제 수지를 감시해 국제 금융 체계를 감독하는 것을 위임받게 된다.
회원국의 요청이 있을 때는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그 나라의 경제정책을 지시하기도 한다.
IMF의 본부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다.
외환위기의 원인
1. 아시아 경제위기
먼저 배경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아시아 전체에 일어난 대형 사태였다. 1997년 여름 태국부터 시작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부터 번진 외환위기 는 같은 해 가을 한국을 연쇄적으로 강타했고, 직접적인 경제 위기까지는 아니었던 중국과 일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2. 과잉투자
외환위기 사태 발생 직전까지, 김영삼 정부의 금융 정책으로 인해 각 기업들은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하며 무분별한 과잉투자를 벌였다. 과다한 외채를 들였다.
3. 놓쳐버린 골든타임
외환 위기 직전이 호황으로 여겨졌지만, 위기 조짐은 전년인 1996년도부터 보였다. 1996년도의 경제성장률이 1995년도의 9.6%에서 7.9%로 떨어졌던 것이 그 단초였고, 언론에서는 경기 침체를 잇따라 보도하고 있었다. 즉, 이미 그 전부터 불황 조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성장률 감소가 수출액 감소, 대외 채무 폭증 등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들은 구조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외환 위기를 초래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과 은행마저도 나날이 무너지며, 대규모 실업 - 대량의 부동산 매각 - 금융 불안 등이 일어나게 되었고, 외환 위기 상황으로 확실화 된 이후에야 IMF의 계획에 따라 전방위적인 경제적 체질 개선과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실행되었다. 이는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경제위기 사태이다.
4. 미국과 일본이 외화 대출 거절
IMF에 돈을 빌리면?
IMF 구제금융 요청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1960년대에 시작하여 1980년대~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고도 경제 성장이 사실상 종료되었으며, 그러한 방향에 부실한 지점이 있다는 것까지 의미했다.
또한 IMF구제를 받게 되면 국가 경제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대신 명령대로 나라 경제 운영을 해야 한다. 고용 유연화 정책으로 대거 해고가 발생하곤 해서 IMF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금모으기 운동
금모으기 운동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대한민국의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이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나라(대한민국)에 자발적인 희생정신으로 내어놓은 운동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 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다. 전국 누계 약 351만 명이 참여한 이 운동으로 18억 달러 어치의 약 227톤의 금이 모였다. 국가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희생정신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금모으기 운동의 결과
금모으기 운동은 1998년 2월 말 주택은행·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이 금모으기 업무를 중지한 데 이어 4월 말 농협중앙회를 마지막으로 모두 끝났다. 걷힌 금은 약 227t이다. 이를 통해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진 2001년 8월 IMF로부터 지원받은 195억 달러의 차입금을 모두 상환했다.
금모으기 운동의 평가
금모으기 운동은 국민들로부터 외환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IMF 외환위기 발생 20년을 맞아 '국민의 인식과 삶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하면 가장 먼저 '국민의 금모으기 운동(42.4%)'을 연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