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그는1889년 4월 20일,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인의가난한 집의 맏이로 태어났다. 예술을 좋아했고 빈의 미술대학에 가려고도 했지만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해 가지 못했다. 고아연금으로 살다가 오스트리아에서 뮌헨으로 갔고 그때 터진 제1차 세계대전에 지원병으로 입대해 조직원의 눈에 뜨게 되었다.
2. 히틀러와 나치
1918년 독일은 패전과 더불어 혁명으로 독일제정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당시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사회주의와는 무관하게 옛 지배세력과 협력하고 같은 좌익인 공산당과 싸우며 국민의 신임을 잃은 상황이었다. 이후 조그마한 우익단체가 1919년 독일 노동자당을 만들었고 그 이후에 국가 사회주의독일 노종자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앞부분인 NATIONAL-SOZIALIST의 앞 자를 따NAZI라고 부르게 되었다. (국가 사회주의라는 이름과 무관하게 나치체제는 사회주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나치 정당은 군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당시 히틀러는 웅변가로 파견되었다.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한 경제 위기, 초인플레이션에 허덕였고,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독일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의 미국의 지원은 1929년 대공황으로 멈췄다. 이때 많은 노동자계급은 공산당으로 들어갔고, 농민, 중산층, 자본가, 왕당파 보수주의자들이 나치의 편에 들어 1933년 나치가 내각을 장악했고 3월 5일 총선거로 압승을 거두었다.
3. 나치와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초반 나치 정부는 성공한 듯 보였다.케인즈의 정부의 재정지출이 유효수요를 증대해 국민소득의 증대를 몰고 오는 가르침을 이행해 성공했다. 또 일종의 평등주의 정책으로 계급에 상관없이 능력으로 젊은이들은 관직에 등용해 인기가 좋았다. (*그 당시 유대인학살은 거의 소문으로만 간주되었다. 유대인의 열등함이라는 비과학적 인종주의는 프랑스 학자 고비노의 인종이론에 토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독일에 있던 유태인 절반이 학살당했다.) 독일은 과거의 영광에 부흥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를 공격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