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방인 김모씨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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٩(๑❛ᴗ❛๑)۶이번 요약사전 포스팅의 주제는 '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 ' 입니다!

 

 

목차

1. 수니파와 시아파의 역사적 갈등

2. 사우디와 이란

3. 시리아 내전

 

 

수니파 시아파 이미지출처: 대한민국 청소년 의회

 

1. 수니파와 시아파의 역사적 갈등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은 1400여년 전, 632년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사망한 뒤, 그 뒤를 이을 후계자 칼리프를 누구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두 종파가 갈라졌다. 수니파는 코란의 절차에 따라 무슬림공동체(움마) 합의에 의한 계승자가 후계자라고 주장한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후계자로 인정했다. 혈통을 통해 움마의 지도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근거에서였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丈人)인 아부 바크르를 추대했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오른팔이었고, 둘째 딸을 무함마드에게 시집 보내 영향력도 셌다. 결국 수니파 의견이 채택돼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가 됐다. 이후 시아파는 공동체 내의 큰 불만 세력이 됐다. 갈등을 겪던 수니파와 시아파는 680년 카르발라 전투를 계기로 완전히 갈라섰다.

 

 

사우디와 이란 사진출처 bbc

 

2. 사우디와 이란.

한마디로 사우디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 이들은 세력을 만들어 싸우고 있다.

- 수니파 세력: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 6개국 걸프협력회의(GCC)와 친사우디 성향의 아랍연맹(AL)/ 시아파 세력: 이란·이라크·레바논 헤즈볼라

수니파와 시아파는 서로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처형하고 비난하기를 반복한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단절 배경에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사우디의 건국이념인 보수적 수니사상 ‘와하비즘’을 이단이라고 비난한 것이 발단이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사우디가 같은 수니파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를 지원한 데다 1987년 7월 사우디 메카 성지순례에서 이란 순례자들과 사우디 경찰이 충돌하면서 쌓인 감정도 작용했다. 양국은 1991년 외교관계가 복원됐지만 중동의 패권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 이어져왔다.

미국이 중동에서 예전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사우디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이 테러를 지원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미국이 적극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이란 방어벽이 약화돼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사진출처: 서울경제

https://paris-etranger.tistory.com/147

3. 시리아 내전.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정권(알아사드) 대 수니파 반군, 작년 터진 예멘 내전은 수니파 정권 대 시아파 반군의 대결 구도다. 현재 이슬람 신자는 수니파가 85%로 다수, 시아파가 15%로 소수이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조선일보 기사

 

그럼, ' 수니파 시아파 갈등 ' 에 대한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ʘ̅͜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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